천인갱이란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는 중국 하이난 섬에는 
일제강점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1200여 명이 '천인갱'에 묻혀있습니다.
 


'천인갱'… 잊혀진 1200명의 이야기

 

 





"나는 그때 해남도(하이난 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해남도 간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 부르더니
 
옷 갈아입고 완장을 하나씩 주더라구요.

거기엔 '조선보국대'라고 써 있어요."

하이난 섬 강제징용 피해자 표태순 증언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빌미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했습니다.

이후 중국을 침략한 일본은 중국 남방지역까지 전선을 확대했으며, 1939년 하이난 섬을 침략했습니다.

일본은 하이난 섬의 풍부한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각 나라에서 수 만 명을 강제로 끌고 갔고

1943년 조선의 형무소에 수감중이던 조선인 2000여 명을 하이난 섬으로 강제동원 했습니다.

일본은 이들을 '남방파견보국대(조선보국대)'라고 불렀습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도로, 철도, 비행장, 항만 등지의 건설현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습니다. 이들은 12시간 이상의 강제노동을 했으며 식사 또한 부실하고 제때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들은 일본군의 폭력에 하나둘 쓰러져갔고, 맞아 죽거나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났습니다. 행여 도망치기라도 하면 끝까지 추격해 잡아와 심한 고문으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탈출을 시도하다 2번이나 붙잡혀서 수많은 구타를 당했어요. 맞다가 혼절하면 찬물을 끼얹고 정신이 돌아오면 또 다시 매질을 당하고… 
다른 동료 두명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어요. 나는 운이 좋아서 인지 생명은 부지했는데, 당시 두 손목을 뒤로 결박당한 채 오랫동안 메달려 있어서 그때 손목 뼈가 튕겨져 나왔는데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있어요”


하이난 섬 강제징용 피해자 故고복남 증언


이중 700여 명의 조선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나머지 1200여 명의 조선인들은 하이난 섬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자 남은 조선인들을 몰살한 후 한 곳에 매장했기 때문입니다.

 

천인갱에는 조선인들의 유해가 70여 년의 세월이 넘도록 묻혀있습니다.